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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준비

고대시대

by leahya 2025. 2. 14.

 

1.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구석기 시대는 한반도에서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을 하였고, 구석기 시대에 사용한 도구로는 뗀석기, 즉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 만든 도구로 주먹도끼 찍기, 순배 찌르기 등이 있다. 생활 모습으로는 사냥과 채집, 물고기 잡이 등을 통해 식량을 구했고,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했으며,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 막집에서 거주하였다. 이동 생활을 주로 하였으며, 평등한 사회여서 연장자 또는 지혜로운 사람이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8천년경부터 시작을 하였고, 사용한 도구로는 간석기인 갈판과 갈돌 등을 사용하였고, 빗살 무늬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가락바퀴, , 바늘을 통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드는 데 이용하였다. 이를 통해 원시적인 수공업을 행하였음을 알수 있다. 생활 모습으로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고, 생산 경제가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밭 농사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냥, 특집, 물고기 잡이 또한도 같이 하였다. 주로는 움집 생활을 하였다. 즉 정착을 했다는 증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한 곳에 머물러서 살기 시작하였고, 아직까지는 평등 사회이나 혈연 중심의 씨족을 구성하여 부족 사회의 틀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2.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천년 부터 1500년경, 한반도에 청동기가 보급이 시작되었고, 도구로는 비파형 동검, 거친 무늬 거울, 청동거울, 방울 등이 있고, 토기로는 민무기, 토기, 미송리식 토기 등을 사용하였다. 청동기 시대는 벼농사를 시작하였고 농경이 점차 중시되었으며 산이나 구릉지대의 주거지를 형성하였다. 목책과 환호로 외부 침입에 대비를 하였고, 고인돌이라는 무덤이 있었는데 이는 계급 사회였다는 거를 증명한다.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여 지배자의 무덤이 고인돌이 되고, 고인돌은 군장이 소유한 부와 권력을 반영하였다. 정복 활동 등을 행하여 주변 지역을 정복했으며, 사회 규모가 확대되면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등장하였다. 철기 시대는 철제, 농기구 등을 사용하였고, 청동기 제작 틀인 거푸집을 제작하여 한반도의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발전하였다. 사용했던 도구로 세형동검 또한 있고, 무덤은 널무덤, 독무덤 등이 있었다우리나라 무덤에서 철기와 함께 명도전, 등 중국 화폐가 출토되었고 한자를 사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3. 고조선

조선이 성립이 되었는데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아사달을 도읍으로 건국하였다고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이며,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를 통하여 선민사상, 농경사회, 홍익인간의 건국 이념 토테미즘, 제정일치 사회를 확인할 수 있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이 발전하였는데 기원전 3세기경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고, 중국 연과 맞설 정도로 성장하였다. 기원전 3세기 초 연내 장수 징계의 공격을 받아 서쪽의 넓은 영토를 상실하고 수도를 왕검성으로 옮겼다. 위만조선이 성립하고 발전하였는데, 위만과 유이민들이 고조선으로 이주하여 이들에 의하여 선진 철기 문화가 유입이 되었다. 세력을 넓힌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는데 이거는 이때는 기원전 194년이다. 준왕은 남쪽 진국으로 이동하였고, 위만조선이 발전하여 진번과 임둔을 복속시키는 등 정복 활동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중국의 한과 남방의 진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독점하기도 하였으며,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농업, 수공업, 상업이 발달하였다. 위만 조선이 중국의 한과 남방의 진이 직접 교류하는 것을 막고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한나라를 압박하였고, 우가 왕 때 한무제가 고조선을 침입하여 왕검성에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되었다. 고조선은 8조법이라고 있는데 범금 8조로 노동력을 중시하고 농업 중심의 사회이며 형벌이 존재하고 사유재산을 중시하고 계급이 분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

 

4. 부여

부여는 연맹체 국가로 왕과 대가들이 함께 국정을 운영하였다. 왕 아래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 여러 가들이 존재하고, 대가들은 별도로 저마다 독립된 행정구역 기능을 하는 사출도를 다스리기도 하였다.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였고, 특히 특산물로는 말추, 모피 등이 유명하였다. 112법이라는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하는 법이 있었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풍속으로는 12월 연고라는 제천 행사가 개최되었고, 형사취수제, 즉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혼인하여 함께 생활을 하고,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 제도도 있었다. 3세기 말에 쇠퇴하여 5세기 말에 고구려에 흡수되었고 멸망하였다.


5. 고구려

고구려는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5부족 연맹체,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각기 사자, 조의, 선인인 등의 관리를 거느리고 있으며, 제가 회의가 있었고,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농사에 불리한 관계로 약탈 경제가 발달하였다.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설치하였다. 사회는 부여와 동일하게 112법이 있었고, 법이 엄격하여 큰 죄를 저지르면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가 개최가 되고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부여와 마찬가지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안으로 삼는 형사취수제라는 풍속이 있었다.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여 백제 신라와 삼국을 이루었다.

 

6. 옥저와 동예, 삼한

옥저는 함경도 동해안 지방에 있었고, 군장 국가로 읍군, 삼로 등의 군장이 통치하였다. 왕이 없었고 지리적인 조건으로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고구려의 공납을 바쳤으며, 민며느리제가 있었으며, 풍속으로는 가족 공동 무덤이 있었다. 동예는 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방에 있었고, 옥저와 마찬가지로 군장이 통치하여 왕이 없었고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공납을 받치기도 하였으며, 특산물로는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있었다. 족외혼 혼인 풍습이 있고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고, 풍속으로는 책화가 있었다. 삼한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 진으로 성장하였으며,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이 성립되었다. 정치는 재정 분리 사회이고, 제사장인 천군이 신성 지역인 소도를 다스리며 죄인이 소도로 도망가면 군장이라도 함부로 잡아갈 수가 없었다.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철을 생산하는 국가로서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외에 철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씨를 뿌리는 5월과 추수하는 10월에 계절제를 개최해야 하는 풍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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